‘=’ 기호는 누가 만들었을까?
— 두 줄에 담긴 수학적 선언
“아무것도 서로 같을 수 없다면, 세상은 설명될 수 없다.”
— 로버트 레코드(Robert Recorde)
= 이것은 단순한 부호가 아니다
우리는 수없이 ‘=’ 기호를 사용합니다.
1 + 1 = 2
100 – 25 = 75
오늘 점심값 = 커피 포함 13,500원
너무 익숙해서, 마치 공기처럼 생각 없이 쓰지만 이 부호가 처음 나타난 건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
한 영국 수학자의 손에서였습니다.
🧑🏫 누가 ‘=’을 처음 썼을까?
로버트 레코드, 16세기 웨일즈의 의사 겸 수학자
**로버트 레코드(Robert Recorde, 1512~1558)**는 영국 웨일즈 출신의 의사이자 수학자, 교육자였습니다.
그는 라틴어로만 쓰이던 수학책을 영어로 번역해 보급한 선구자였고, 당시 귀족과 상인들이 수학을 실용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닦은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The Whetstone of Witte-지혜의 슷돌 》(1557)는 영국 최초의 대중 수학서로,
바로 이 책에서 인류 최초로 ‘=’ 기호가 등장합니다.
📖 왜 두 줄을 선택했을까?
레코드는 책 속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두 가지 사물이 그 어떤 것보다 더 동등할 수 없을 것이므로, 나는 등호(Æquall Gor)를 위해 두 개의 평행선, 즉 한 쌍의 같은 길이의 선분을 사용하고자 한다." (And to avoide the tedious repetition of these woordes : is equalle to : I will sette as I doe often in woorke use, a paire of paralleles, or Gem 1 owe lines of one selfe kinde, thus: = , bicause no.2. thynges, can be moare equalle.)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설명인가요.
‘같다’는 개념을 단어가 아니라 상징으로 표현한 순간. 그는 이 기호를 이렇게 처음 사용했습니다.
다만, 이때의 등호는 지금보다 길었습니다.
“====” ← 이런 식이었죠. (오늘날처럼 간결한 등호는 훗날 유럽 대륙 수학자들이 정제해 정착시켰습니다.)
🌍 그 이전엔 어떻게 표현했을까?
‘=’ 기호가 생기기 전엔
is equal to, aequales, est, gleich, pari sunt 등 각 나라 언어로 표현되었고, 수식이 아니라 문장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14 7 + 15 pari sunt 29 (라틴어로 "같다"는 뜻)
즉, 레코드의 등장은수학이 문장에서 상징으로 넘어가는 근대 수학 혁명의 신호탄이었던 셈입니다. 등호가 유럽 전역의 수학 교과서에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까지는 100년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츠 같은 영향력있는 인물들이 등호의 유용성과 편리성을 인정하고 다양하게 사용하면서 점차
자리를 잡기 시작하여 현재에 까지 올수 있었습니다.
📌 당시 시대 배경은?
16세기 유럽은 르네상스에서 근대 과학으로의 이행기였습니다. 문자 인쇄술의 보급으로 책이 대중화되고,
상인과 기술자들이 실용 수학을 필요로 하던 시기죠.
이때 레코드는 단지 기호 하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수학의 민주화를 선언한 인물이었습니다.
- 수학은 성직자와 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 평범한 시민, 장사꾼, 장인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죠.
🧠 =, 가장 단순한 기호의 철학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 기호는 이제 우리 삶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오늘날 쓰고았는 이 단순한 기호는 복잡한 표현의 불편함을 해결하고자 애썼던 한 수학자의 깊은 고놔와 열망을 담고 있습니다.
수식의 좌변과 우변을 잇는 이 두 줄은,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연결하는 수학의 다리이자, 진리와 명제를 증명하는 지성의 선언문입니다.
가끔은 계산기 너머로 레코드가 생각했던 그 뜻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두개의 평행선보다 더 평등한 것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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